아파트 분양가 1년새 12.54% 뛰자…정부, 결국 벼르던 칼 뺐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왼쪽)과 김경욱 2차관이 8일 오전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지난해 ‘9·13 주택시장 안정대책’ 당시에도 꺼내들지 않았던 카드인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하기로 한 것은 최근 불안 조짐을 보이고 있는 주택시장을 그대로 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출범 첫해인 2017년 ‘8·2 부동산 대책’에서 집값이 급등하는 지역에 한해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 가능성을 열어놨지만 적용 대상 요건을 까다롭게 규정해 사실상 실제 시행은 유보한 바 있다. 당시엔 분양가 상한제가 시장에 끼칠 영향과 함께 일부 부작용도 고려했던 것인데,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최근 주택시장 움직임은 심상치 않다. 지난 1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맷값(한국감정원 조사)은 34주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고 강남3구(서초·강남·송파) 집값은 몇주 전부터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새 아파트 분양가의 가파른 오름폭은 주택시장의 최대 불안 요인으로 떠올랐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집계를 보면, 지난 5월 말 현재 서울의 새 아파트 평균 분양가는 3.3㎡당 2573만9천원으로 지난 1년간 상승률이 12.54%에 이른다. 지난해 5월부터 올해 5월까지 서울 아파트 매맷값이 1.96% 오른 것에 견줘 6배 이상 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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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도입은 지난해와 같은 주택시장 과열 우려 때문이 아니라 강남을 비롯한 민간 아파트 분양가의 과도한 상승을 억제할 필요가 커졌기 때문이라고 선을 긋는다. 최근 강남을 비롯한 서울 요지에서는 후분양을 통해 주택도시보증공사의 분양가 규제를 피하려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강남 재건축 단지들이 후분양을 하면 주변 시세 수준으로 분양할 수 있어 삼성동이나 반포동 등 강남권 주요 지역의 경우 현 시세 기준으로 3.3㎡당 6천만~7천만원대 분양이 가능해진다. 

보증공사가 요구하는 강남·서초구 분양가격이 종전 분양 아파트의 최고 수준인 3.3㎡당 4500만원 이내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격차다. 이들 단지가 공정률 80% 이상에서 후분양을 하면 보증공사의 분양보증 없이도 분양이 가능해 분양가를 통제할 방법이 없어진다. 그러나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면 후분양 단지도 예외 없이 상한제 규제를 받게 된다.

국토교통부는 상한제 도입으로 강남권 재건축 단지의 분양가가 큰 폭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국토부 주택정책과 관계자는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강남 재건축 단지의 분양가가 보증공사의 고분양가 관리 방식에 따른 산정액보다 훨씬 낮을 것으로 예상됐다”고 말했다.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하려면 상한제 적용 요건을 규정하는 주택법 시행령을 고쳐야 하며, 이 경우 법 시행일 이후 ‘입주자 모집공고’를 하는 단지부터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현행법은 최근 3개월간 주택가격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를 초과하는 지역 가운데 △최근 1년간 해당 지역의 평균 분양가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를 초과하거나 △분양이 있었던 직전 2개월의 청약경쟁률이 일반 주택은 5 대 1, 국민주택 규모(85㎡) 이하는 10 대 1을 초과하거나 △3개월간 주택 거래량이 전년 동기보다 20% 이상 증가할 때 등에만 상한제를 적용하도록 돼 있다. 

이달 중 시행령 개정안이 발의된다면 40일의 입법예고와 규제심의 등을 고려해도 9월 중에는 공포가 가능해진다.

부동산 업계에선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되면 현재 후분양을 검토 중인 강남권 재건축 단지와 서울 여의도 옛 문화방송 터에 들어설 ‘브라이튼 여의도’, 종로 세운3 재정비촉진지구 등이 규제 시행 전 급히 선분양으로 돌아설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길게 보면 강남권 등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에선 주택 공급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사업 초기 단계의 재건축조합으로선 분양가 규제가 풀릴 때까지 사업을 미루거나 사업을 진행해도 일반분양 물량을 줄이는 ‘1대1 재건축’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김규정 엔에이치(NH)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은 “분양가 상한제 적용 요건이 구체적으로 어느 수준에서 정해지는지 봐야겠지만, 현재로선 분양가 수준이 높은 강남 주요 지역과 강북 도심권의 새 아파트 공급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