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맨 대신 엑스 '우먼'… 맨 인 블랙 대신 '우먼' 인 블랙

여성 캐릭터가 중심인물로… 극장가 점령한 '페미니즘 코드'

"늘 여자들이 남자를 구하는데, 이참에 이름도 '엑스우먼(X-women)'으로 바꿔."

이달 초 개봉한 '엑스맨: 다크 피닉스'(감독 사이먼 킨버그)의 한 장면. 자비에 교수(제임스 매커보이)와 언쟁을 벌이던 미스틱(제니퍼 로런스)이 맥락과 전혀 관계없이 갑자기 '엑스맨(X-men)'이라는 단어를 걸고 넘어진다. 남성만을 지칭하는 듯한 이 용어가 불편하다는 얘기다.

'페미니즘 코드'가 극장가를 휩쓸고 있다. 화제작치고 페미니즘 코드를 활용하지 않는 영화가 없다. 특히 대중의 반응에 민감한 블록버스터, 상업 영화일수록 이런 경향이 눈에 띈다. "요즘엔 상업 영화가 오히려 예술 영화보다 덜 마초적이고,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진1~3

그 선두엔 디즈니가 있다. 500만 관객을 넘긴 디즈니 실사 영화 '알라딘'(감독 가이 리치)은 1992년 원작을 충실히 재현했지만, 재스민만큼은 공주가 아닌 술탄(왕)이 되고 싶어 하는 진취적인 캐릭터로 각색했다. 그가 "난 지지 않아. 내 입을 막아도 두려워 떨지 않아. 난 절대 침묵하지 않아"라며 수록곡 '스피치리스(Speechless)'를 부를 땐 의지에 찬 여성 운동가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20일 개봉한 '토이 스토리 4'에선 드레스를 벗어 던진 도자기 인형 보핍이 주인공 우디를 질책한다. "내가 뭐랬어! 내 지시 따르라고 했지?"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장르나 시리즈물도 이젠 여성 전성시대다. 여성 경찰 콤비의 활약을 그린 '걸캅스'(감독 정다원)는 지난 5월 비수기 극장가에서 160만 관객을 모으며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페미니즘 코드도 충분히 상품 가치가 있다는 걸 보여준 예. '맨 인 블랙' 시리즈도 남녀 버디물로 바뀌었다. 12일 개봉한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감독 F. 게리 그레이)에선 두 여성 요원이 '맨(Men) 인 블랙'이라는 표현을 놓고 빈정거리는 장면도 있다. 갓 들어온 신입 에이전트 M이 어이없다는 듯 "'맨' 인 블랙요?"라고 묻자 에이전트 O가 한숨을 내쉰다. "시작도 하지 마. 여러 번 얘기해봤어. 그 이름에 애착들이 커. 시간 좀 걸릴 거야." 남성 요원인 에이전트 H가 "맨 앤드 우먼 인 블랙"이라고 말하자 "영리한 놈"이라며 치켜세우기도 한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성별 할당제를 하듯 '이쯤엔 이런 내용이 들어가야 여성 주체성이 완성된다'고 의식하고 장면을 만들다 보니 작위적인 장치가 도드라져 보이는 점은 아쉽다"면서도 "영화 제작자들이 변화한 대중의 의식에 맞춰 '성 평등'이란 개념을 가지고 각본을 쓰거나 연출하는 상황은 긍정적 변화"라고 했다. "페미니즘 코드가 이젠 대중 영화의 내규처럼 쓰인다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대세가 된 거죠."